연성/Arknights Dream

블랙스카 - 소라고둥에 담긴 것

돌의꿈 2023. 10. 30. 19:45

 

  "소라고둥을 귓가에 대면 파도 소리가 난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블랙은 소문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대신에 뭍으로 올라온 어느 사냥꾼을 떠올렸다. 로도스라는 함선은 그 이름과 다르게 물 위를 떠다니는 함선이 아니고, 지상의 별은 바다의 별과 다른 방위를 가리킨다. 테라 대륙을 항행하는 배는 물 위에 뜰 수는 있어도 물 아래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블랙의 그리움은 바다에서 왔다. 그는 바닷속 도시에 발을 딛은 적이 없음에도. 그가 깊이 공감하는 한 사람이 바다를 그리워하니 그 또한 바다를 그리워함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잠든 방에 홀로 일어나 멍하니 함선의 유리창 밖을 내다보는, 두 개의 달빛이 비추는 옆모습을 보며 블랙은 가본 적 없는 그리움을 안았다. 

 

  스카디는 언젠가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로도스는 그 길에 함께할 수 있을진 몰라도, 바다에 닻을 내리는 것만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블랙은, 그래도 괜찮았다. 그는 그저 길 잃은 범고래가 마음 붙일 곳이 있길 바랄 뿐이니까. 그 또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지평선 너머를 마음속으로 그려 본다. 블랙이 아는 스카디에게 허락된 물은 좁디좁은 욕조 뿐이었음에도, 그는 어쩐지 바다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스카디가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어쩌면, 테라와는 어울리지 않는 작은 기적이 일어나서 범고래가 무사히 바다에 돌아간 다음에 지상 여행을 잊지 않고 다시 그를 만나러 와 준다면 아주 기쁠 테니까. 그래서 블랙은 시에스타로 떠나는 전달자를 붙잡았다. 

 

  "소라고둥을 귓가에 대면 파도 소리가 난대."

 

  두 달 뒤, 전달자는 시에스타 해변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소라를 골라왔다는 갖은 생색을 내며 돌아왔다. 흰 소라껍질은 꼭 부서지는 파도와 같은 색이어서, 스카디가 휘두른 검 끝에 반사되는 일광과 같은 색이어서 블랙의 마음에도 쏙 들었다. 그는 소라 껍질을 귓가에 대고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웃고 있었다. 바로 스카디를 찾아 선물이라며 소라고둥을 건넸을 때에도, 눈을 감고 소라에 귀를 기울이는 스카디를 보면서도. 곧 눈을 뜬 스카디는 블랙을 따라 웃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수줍게 웃었고, 블랙은 그 웃음뿐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소라고둥을 귓가에 대도 파도 소리는 나지 않는다.

 

  스카디는 홀로 남겨져 다시 귀를 기울였다. 여전히, 소라고둥이 속삭이는 소리는 그가 아는 파도소리와는 달랐다. 소라 껍질의 우둘투둘한 감촉이 스카디의 손 안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나 여전히 소라는 그리움에 어떠한 답도 주지 못한다. 소라가 담은 바다는 해변가의 바다, 육지 생물이 보는 바다기에. 스카디가 아는 에기르의 도시에는 이런 아름다운 빛의 소라가 없으며, 따라서 육지의 소라는 사냥꾼이 부르는 어떤 노래도 춤도 모른다. 그러나 스카디는 처음으로 듣는 소라 껍데기 특유의 공명이 싫지 않았다. 이것이 스카디가 아는 파도소리 - 바닷속에서 듣는 파도소리와는 다르다고 해도, 이 안에는, 스카디에게 깊이 공감하여 함께 슬퍼해줄 다정한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까.

 

  스카디는 다시 소라고둥에 귀를 기울였다. 여전히 소라고둥에는 범고래가 그리워하는 소리는 없다. 그러나 스카디는 그 소리도 싫지 않았다. 마음에 들었다. 다소 서투르더라도 위로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잡고자 하는 손이, 함께 있고자 하는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스카디는 방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그 소라 껍데기를 두었다. 스카디가 아는 파도와 블랙이 아는 파도가 다르다 해도, 그것은 앞으로 차차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스카디에게 돌아갈 길은 멀고, 길 잃은 인어에게 있어 섬은 최고의 안식처이니. 단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이 향하는 방향뿐이다. 그리하여 스카디는 노래한다. 모르는 파도소리에 맞추어, 익히 알고 있는 노래를.

 

  물 없는 함선, 로도스 아일랜드는 오늘도 고요히 대지를 가로질렀다. 밤의 정적을 울리며, 바다를 그리워하는 노래가 잔잔한 대지 위로 퍼져 나갔다. 그 노래에 귀기울이는 것은 두 사람이면 되었다. 그뿐이면 충분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