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미저 - Aware
명일방주 10지역 스토리 스포 있음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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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답을 알고 있는 의문에 시달린다.
‘전술 포인트 D에서 F로 이동 중. 타겟 확인 불가. 수색을 계속하겠음.’
박사의 지시는 간단했고, 엘리트 오퍼레이터가 맡는 임무가 대부분 그렇듯 도중에 보고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러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문장의 형태로 머릿속에 박아넣는 것은 오로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였다. 전장의 탄내를 익숙하게 헤치며, 미저리는 포탄에 깨어진 건물 파편 더미를 때로는 피해 돌아가고 때로는 타 넘었다. 그의 아츠를 사용한다면 평지와 돌밭은 크게 다른 길이 아니겠으나, 돌발 상황을 대비해 힘을 아껴두는 것은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닐 것이다. 그가 맡은 임무에서 마주칠 확률이 높은 대상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때는 더더욱. 그는 일렁이지 않는 먼지바닥을 딛으며, 포격이 남긴 흔적 틈으로 묵묵히 나아간다.
로도스의 미저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걸음이지만, 또 그 이름에 어울리는 걸음이었다. 그가 지나치는 거리에, 성벽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건물 안에 스러져 있는 것은 무고한 목숨이다. 홀로 살아서 달리는 이는 짧은 보급을 위해 무너진 건물 틈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자신들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방위포가 어찌하여 제 삶을 덮쳤는지 모르는 채로 굳어 떠진 눈을 감겨 주며, 미저리는 겪어보지 못한 일을 머릿속에 그린다.
힐록 카운티의 참상은 로도스 오퍼레이터와 로도스가 그곳에서 보호한 몇 사람에 의해 구술되었고, 기록되었다. 그 기록을 정리하겠다 자청한 것이 글에 아츠를 담는 술사였고, 늦었으나마 유해 수습을 위해 자원한 것이 저였다. 전자는 승인되었고, 후자는 반려되었다. 사실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면, 이제 죽음의 땅이 된 곳에 유해가 성하게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인간의 피와 살은 너무도 약하며, 힐록 카운티를 휩쓴 폭격과 화마는 강렬했다 한다. 증언대로라면 유품이나 간신히 남겼을까 말까다. 유해건 유품이건, 구조가 아닌 사후 처리라면 엘리트인 그가 갈 필요는 없다. 엘리트 오퍼레이터가 필요한 자리는, 슬프고 또 분하게도, 너무 많았다.
고통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땅이었다. 동료의 죽음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미저리에게 있어 아웃캐스트는 단순한 동료 이상이었다. 차마 말로 하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알았다. 사랑에는 진저리를 치는 그 밴시나 연구밖에 관심 없는 기술자마저도 눈치챈 지 오래겠으나 아웃캐스트는 단 한 번도 '그런 의미'로 곁을 내어준 적 없었다. 산크타에게 있어 둘은 전우 그 이상은 아니었다. 보답받을 일 없는 마음은 조각이 되어 쌓였다. 이제 그 조각은 입 밖으로 내어 전할 수도 없다. 그래서 선택한 이름은 아니었으나, 그렇기에 더욱 와닿는 이름이었다. 미저리. 그의 마음 속 고통 더미 위에 천사의 깃털 하나가 더 올랐다.
그리고 비극은 이제 힐록 카운티 대신 런디니움을 달리고 있다. 미저리는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를 구한 것에 후회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머리도 마음도 신념과 그것에 일치하는 임무를 우선한다. 알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미저리 그가 누군가의 고통을 더는 데는 성공했으니 자신의 고통에는 조금 잠겨도 괜찮지 않을까? 후회하더라도 돌이키지 않을 일이니 멋대로 비탄에 잠겨도 괜찮지 않을까?
저 멀리에서 돌더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박사의 지시는 간단했고, 미저리가 해야 할 일은 명료했다. 그리고 돌들이 부딪히는 소리는 명확했다. 이제 그는 제 발끝에 아츠를 싣는다. 그의 몸과 하나 된 오리지늄 덩어리가 폐허가 된 땅을 푸르른 초원처럼 달리도록 허가한다. 그는 잔상을 뒤로 하고 포격이 뚫은 구멍 위를 달리며 먼지를 헤치며 나아간다. 도달한 곳, 전투의 흔적이 적나라한 땅 위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
그날의 소식이 전해진 이후로, 구하고 싶었던 이는 늘 같다. 천사. 그러나 땅에 쓰러진 것은 악마이다. 대다수 테라인의 공통적인 인식이 아닌, 오로지 고통받은 개인의 감상으로, 꽃보다 악마의 풀이라 부르고 싶은 이름이 죽어가고 있다.
그가 바라 마지않던 순간이 아닌가?
미저리는 이름 모를 이의 눈을 감기려 무릎을 꿇었을 때와는 달리, 이름을 아는 자의 옆에 멈추어 서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묵묵히 내려다본다. 지금이라면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켈시나 박사마저 미저리가 고할 거짓을 꿰뚫어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면.
하지만 얼굴을 덮은 먼지가 눈물로 얼룩진 채로, 지키고 싶었던 이의 시체에 손을 뻗고 있는 고통을 외면하는 법을, 그는 모른다. 천사는 단 한 번도 그에게 그런 고통을 외면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대신 고통에 맞서 싸우는 법을, 이 땅에서 끝없이 이어질 비극의 굴레를 끊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함께 나아갔다. 날지 못하는 천사는 느리고, 달릴 줄만 아는 악마가 더 빨랐으나, 그들은 대체로 보조를 맞추어 나아갔다. 단둘뿐 아니라, 여럿이서.
그러니 미저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그는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기로 한다. 이미 충분히 많이 진 짐에 꽃 한 송이 얹는 것은 일도 아니다. 전장에서 고글을 벗을 수 없기에 감정을 억누르려 노력하며, 그는 나이프를 홀스터에 꽂고 손을 내밀었다.
답을 알고 있으나 끝이 없을 의문은 여기서 꽃을 꺾어도 그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옳음에 한없이 가까운 선택을 하는 이유는 의문에서의 해방과 소녀의 죽음에 관계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그래야 하니까.
이것은 옳은 일이고,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해 왔으니까.
전투 한복판에서는 유해를 수습할 수 없다. 이미 오래 전에 그것을 아쉬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미저리는 만드라고라가 손을 뻗고 있던 자리에 가볍게 목례하고, 소녀를 데리고 그 장소를 빠져나간다.
물 위를 달리듯 가볍게 발을 놀리면서도, 답을 알기에 도망칠 수 없는 의문이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아웃캐스트, 당신은 마지막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그리고, 혹, 어쩌면, 마지막에, 나를…
만드vs혼에서 혼을 구한 이후, 만드를 줍기 직전까지의 시점... 그런 설정입니다
미저리가 아웃캐스트를 오래 좋아했지만 직접적으로 좋아한다고 한 적은 없다는 설정 (달은 아름답네요는 했지만 사랑한다고는 안 한 대략 그쯤)
이걸 상단에 안 쓰는 이유 : 쓰면 9~10지 스포라서.. 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