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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Arknights

쉬셔야 해요, 박사님!

by 돌의꿈 2023. 2. 1.

옆탐라뇌물...

아미야가 귀여워요

 


 

  AM 09:00

  로도스 아일랜드, 박사의 집무실

 

  포근한 햇살이 유리창에 손을 짚고 창틀마저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어느 봄날. 항행을 멈추지 않는 함선마저도 따스함에 물들게 만들기 충분한 날씨였다. 행동이 빠른 몇몇 오퍼레이터들은 이미 갑판으로 치고 올라가 자리를 깔고 누운 어느 아침. 로도스 아일랜드의 작은 리더는 이 좋은 아침에도 바깥을 내다 볼 생각을 하질 않는 박사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좋은 아침이에요, 박사님."

 

  그렇게 인사하며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 아미야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마주했다. 다크 서클이 턱밑까지 드리운 박사가 어제 작별 인사를 건넨 그대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광경을.

 

  "박사님!"

 

  로도스 함내 상주하는 전달자들이 입을 모아 100년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한 날씨라고 찬탄하고, 재앙에 가려지는 대신 푸른색을 여러 번 덧칠한 하늘 아래, 오리지늄 먼지 섞인 흙바람 대신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이런 날에!

 

  "…좋은 아침, 아미야."

 

  박사는 집무실 커튼을 꽉꽉 닫고 책상 앞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AM 09:07

  로도스 아일랜드, 햇빛 드는 박사의 집무실

 

  "박사님. 설마 어제 안 주무신 거에요?"

  "그건 아니야."

  "그러면 설마 개인실로 안 돌아가시고 여기서 주무신 거에요?"

 

  아미야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박사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버린다. 작은 토끼가 막 집무실의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 놓은 터라 방안을 도는 부드러운 바람이 두 사람의 콧잔등을 간질였지만, 그들 사이의 어색한 공기를 흩뜨려 놓기에는 너무도 부족하다. 결국 먼저 두 손을 든 것은 아미야 쪽이라, 작은 토끼는 귀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폭 쉬었다.

 

  "몇 시간이나 주무셨어요? 두 시간?"

  "……"

  "더 짧으시군요…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주무셨으면 좋겠는데요…"

  "……이것만 보고."

 

  아미야는 읽다 만 논문을 다시 집어드려는 박사의 손을 급하게 허공에서 잡아챘다. 박사가 놀란 얼굴을 하지만,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잡아끌며 외쳤다.

 

  "그러지 말고, 안 주무실 거면 저랑 바람 쐬러 나가요!"

 


 

  AM 09:18

  로도스 아일랜드, 갑판 위

 

  "오늘 날씨가 정말 좋아요."

 

  갑판 저쪽의 소란을 애써 무시하며, 아미야는 박사를 사람 없는 곳으로 이끌었다. 거대한 함선의 그만큼 넓은 갑판은 이동도시에 비할 바는 못 되어도 작은 마을 하나 정도는 올려놓을 수 있을 규모라, 한쪽 끝에서 체육대회가 열리는 동안에도 다른 끝에서 조용히 쉬는 것이 가능했다. 다른 때였다면 그들이 제발 체육 대회만 하고 있길 바라며 살피러 갔겠지만, 지금은 박사와 동행하고 있으니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의 박사에게 필요한 건 놀이가 아니라 휴식이었으니까.

 

  하지만 박사 입장에서는 또 일하다 말고 갑자기 끌려나온 것. 아미야는 아까부터 말이 없는 박사의 옆모습을 흘끔흘끔 살폈다. 박사는 저 멀리, 지평선과 그 너머의 대지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확실히 이 테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약이나 피, 연기 같은 것이 느껴지거나 보이지 않는 날은 오래간만이었다. 멀리서 본 테라는 제법 괜찮아 보였다. 군데군데 우거진 녹음, 황야의 끝자락이 품은 오아시스, 푸른 하늘. 그런 것들은 꼭 이 땅에 생동감을 준다. 실상은 조금 다르다 해도, 저를 걱정하는 마음을 받아들여 오늘 하루 정도는 테라의 좋은 면만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박사는 생각했다.

 

  "아미야."

 

  짧은 침묵을 깬 것은 박사였다. 옆을 돌아보면, 걱정을 가득 담은 눈으로 박사를 올려다보는 카우투스가 있다. 석관에서 깨어난 이래 늘 함께한 작은 리더는 그 작은 몸에 다 담지 못할 사려깊은 생각과 넓은 마음씨를 지니고 있어, 때로는 박사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하다. 제게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쫑긋 세워진 귀를 보며 박사는 웃었다.

 

  "고마워."

 

  감사 인사에 놀라는 모습은, 평소의 모습이 어떻던간에 아직 아이인 것이 여실히 보여 박사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를 숨길 수 없게 만든다. 아미야는 이내 놀란 표정을 사르르 녹이며, 박사를 보며 마주 웃었다.

 

  "박사님도, 늘 감사해요."


 

  AM 10:04

  로도스 아일랜드, 박사의 개인실

 

  "하지만 그래도 쉬셔야 해요, 박사님!"

  

  박사가 또 보고서나 오퍼레이터 기록에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아미야는 박사를 데리고 개인실까지 내려왔다. 그가 제대로 쉬기 전에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 기세라, 박사는 정말로 두 손 두 발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미야가 보는 앞에서 침대에 누운 박사는, 불을 끄고 나가려는 작은 리더를 불러세웠다.

 

  "아미야."

  "네?"

  "아미야도 요즘 못 자는 거 알아. 아미야도 그대로 가서 쉬어."

 

  걸음을 멈춘 아미야는 박사를 돌아보지만, 이미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돌아누운 박사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 감정을 전하는 것은 말 한 마디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은 박사가 자신을 자주 놀라게 한다고 생각하면서, 아미야는 박사의 작은 걱정도 웃으며 받아들기로 한다.

 

  "네. 박사님.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

 

  개인실의 불이 꺼지고 문이 닫힌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박사나 아미야를 찾을지도 모르고, 방에서 나가면 켈시에게 몇 마디를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안 그래도 짐이 많은 작은 리더를 안심시키는 게 중요했다. 박사는 이불에 묻혀 눈을 감고, 바깥의 햇살만큼이나 따사로운 꿈 속으로 빠져들었다.

 

  

 

 


 

명방 1주년 방송, 그리고 박사와 아미야가 나란히 테라를 보는 메인 일러스트나 애니판의 갑판 위를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작은토끼행복해라...

 

주년 방송이 뭔가요: 때는 1주년 한국어 더빙은커녕 한국서버가 살아있는게 기적이었던 시절 기념방송에서 아미야 성우분이 한국어로 인사해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이 글 제목과 반대지만요 -> https://youtu.be/pn-ra870VWo?t=4367

 

모든 박사님이 행복하시고 들숨에 건강 날숨에 재력이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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