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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OC

고해.

by 돌의꿈 2021. 9. 7.

 

"If you forgive the sins of any, their sins have been forgiven them;
if you retain the sins of any, they have been retained."
John 20:23

 

 

⠀제가 지금부터 고해할 것은 아주 오래된 죄입니다.

⠀저는 제가 뻐꾸기 새끼가 아닐까 의심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지요. 제 어머님과 아버님은 서로에게 충실하셨고, 저는 두 분을 너무도 빼닮았으니 말입니다. 제가 의심하는 것은 제 두개골 안쪽에 든 부분입니다. 양친과 누님까지도 충실한 신의 종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놀라시는군요. 겉으로 보기엔 제법 잘 하고 있었던 모양이죠? 그러나, 저는 감히 그분의 뜻이 아닌 다른 곳에도 눈을 두었습니댜. 교단에서 인정하지 않는 신비. 기적으로 향하는 문의 탐색. 네, 속인들이 흔히 마술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났습니다. 제 불충의 대가를.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
⠀제 첫 실패이자 미련입니다.

⠀이름을 듣고 놀라셨을지도 모르겠군요. 그저 신비가 빚어 낸 작은 기적일 뿐입니다. 영웅, 반영웅의 혼을 현세에 불러 내는 대마술이요. …네. 그 자체로 불경한 것이지요. 젊은 시절의 저는 거기에 연루되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도 그 진상을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단지, 제 부름에 좌에서 불려온 이가 그 살로메일 줄은 저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것에 손대서까지 이뤄야 할 일이 있었고, 실패했습니다. 제 빈 소매는 그 실패의 증명입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당신께서 이 숨을 거둬가지 않으셨으니 분명 쓰임을 다할 곳이 있다, 그렇게 생각했지요.


⠀하지만 더 살아가다 보니 그런 질문을 받는 날도 오더군요.


⠀"고백했다가 차이고 귀의한거야? 맨날 고백만 하네."

⠀"유감이군요. 기대하시는 러브 스토리는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는 성직자에게 그런 질문을 하냐며 웃어 넘겼습니다. 그 때까지도 저는 저를 몰랐습니다. 돌아와서 따라붙은 것은 과거의 한 편린. 떠올린 것은 그 때 사역한 어쌔신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저는 제 뻐꾸기 기질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교단에서 인정하지 않는 신비라도, 그분의 뜻을 밝히는 데 사용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자신을 속이고 맙니다. 그럼에도 감히 이 길을 걷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요하네스는 길고 긴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까지도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과거의 제가 만난 여인은, 제게 안배된 것이아니며 그래서도 안 되는 종류의 인연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생각하곤 합니다. 그 만남은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저는 제가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안 뒤로, 저 자신을 더 옥죄어 왔습니다. 고행으로 용서를, 신앙으로 속죄를.
⠀본디 죽음까지 가져가야 했을 마음이나, 네.

⠀저는 이런 마음을 품고도 용서받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예. 저는 아직도 훌륭한 목자는 못 되는군요. 필시 천국은 제게 안배된 자리가 아니겠지요. 연옥에서 못다한 보속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오래도 되었군요.



⠀"God, the Father of mercies, through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his Son has reconciled the world to himself and sent the Holy Spirit among us for the forgiveness of sins. Through the ministry of the Church may God give you pardon and peace. And I absolve you from your sins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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