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사이로 작게 난 길. 잘 정돈된 자갈이 발 아래서 부서지는 듯한 소리를 낸다. 그러나 발을 들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둥그렇게 닮은 돌은 말짱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길을 따라 걷던 발은 어느 한 곳에서 멈추고, 돌에 쓰인 문구를 굳은 시선이 몇 번이고 반복해 읽는다. 바람은, 카시의 하나로 묶은 머리를 거세게 흔들며 지나갔다. 이 바람이 인사라면 좋았을 텐데,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것은 마술세계에서나 부정될 말이었다.
카시는,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어도 한낱 용병인 자는, 답지 않은 침묵을 지키며 맨바닥에 대강 걸터앉았다. 등에 메고 있던 긴 가방을 풀어, 검이 아닌 작은 병을 찾는다.
“술 좋아하믄 그렇다고 말을 하지.”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슬픔이 깃들어 있다. 용병은 홀로 남아 과거를 회상한다. 별 생각 없이 받은 의뢰에서 맞닥뜨린 신비. 죽어가던 타겟이 어차피 죽을 혼을 살라 남긴 생명을 깎아먹는 저주에 고통받다 당도한 곳에서, 몇 번이고 구해졌다. 갑자기 떨어진 과거, 육지를 가로지르던 길.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정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저 일일 뿐이었는데.
바다 한복판에서 신비가 폭발하고, 침몰하는 배에서 우리를 내보내고 조장 홀로 남은 게 아니었다면 말이지.
나는 그때 당신이 정말로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 때엔 신비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니까. 다시 만난 당신은, 아주 평온하게 인사를 건넸더랬다.
그 때는 당신이 정말로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지금은 신비에 대해 알 만큼은 알아서, 죽음의 의미는 잘 알고 있다.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작은 병의 뚜껑을 열면, 독한 술의 향기가 올라온다. 조장이 이걸 좋아하는진 몰랐지만, 그나마 전해 들은 게 이런 것 뿐이라. 병을 든 손을 기울이면, 많은 이야기를 담은 갈빛 액체가 흘러내린다. 자갈을 어루만지고 흙을 물들이며 생겨난 물길에선 벌써부터 그리움의 향이 났다.
“내 조장 얼굴은 잊어도, 배운 건 잊지 않을 테니까.”
“푹 쉬쇼. 이제야… 좀 조용하구만.”
다시 만날 수 없겠지만, 만에 하나 만난다 해도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을 안다면 만족할 테니까. 그러니 부하가 거기에 뭐라고 입을 대는 것도 곤란한 일이겠지.
“갑니다. 마중은 나오지 마시고, 아아주 늦게 따라갈 테니 게서 잘 있으시고.”
사실은 전하고 싶은 감사가, 말하지 못한 동경이, 내고 싶었던 말이 더 있었지만, 그것은 그리움의 물길에 실어 함께 떠나보내려 한다. 언젠가 자신이 하류에 닿는 날에는 분명히 전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자리에서 일어서, 돌아서 떠나는 길에 미련은 없다. 당신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만족했을 텐데 내가 매달리면 안 되는 거니까. 돌아가는 걸음은, 올 때만큼이나 무거우면서 올 때만큼이나 스스럼없이 나아간다.
“오래 기다렸지, 샤샤.”
옆으로 흔들리는 턱을 따라,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금빛 머리칼이 물결쳤다.
“더 있어도 돼, 미아.”
“됐다, 마 그 양반도 내가 오래 청승떨고 있으면 안 좋아할 끼구마.”
손사래를 치고, 먼저 묘지를 나서는 발걸음은 조금 가볍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인사를 전했으니까. 과거처럼 짐덩이가 아니라 끝까지 같은 전장에 서 있을 수 있었으니까.
쫓아온 발걸음의 발소리는 이윽고 보조를 맞춘다. 두 사람은 돌아가기로 한다. 작별 인사는 이만하면 되었으니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한다.
이것저것/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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